코코의 원래 제목은 『망자의 날(Día de Muertos)』이었다.
코코의 근본 자체가 망자의 날인 것이다.
분명 제삿날인데 너무 신나 보이는 사람들, 실제 망자의 날도
코코와 같을까? 정답은 그렇다. 오히려 더 화려하고 신난다! 망자의
날은 멕시코의 명절로 매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3일간
치러진다.
멕시코에서의 저승은 화려하고 행복한 곳이다. 망자의 날은
저승의 영혼이 이승으로 다시 오는 날인데, 떠난 가족이 오랜만에 놀러
온 거니 즐거움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날을 즐기기 위해
무려 일 년 내내 준비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멕시코에서는 저승 하면 밝고 화려한 세계를 떠올리기 때문에
제작진도 저승을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환상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8백만 개가 넘는 조명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딱 보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이는 저승, 여기엔 무서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리가 아는 저승은 지옥 아니면 천국으로 대변되는 데 비해
멕시코의 저승은 삶의 연속일 뿐이다. 일종의 이사 개념인데,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그대로 삶을 이어간다.
이승 사람들의 기억과 재물로 운영되는 저승에서 이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부자인 사람은 계속해서 부자가, 가난한 사람은
계속해서 가난한 사람이 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가난하더라도 착하게
살았다면 구제받을 수 있는 동양의 저승과 달리 나쁜 짓을 하더라도
인기가 많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게 멕시코의 저승이다.
코코에서도 '헥토르'의 뼈가 낡아서 변색되고, '에르네스토'는 몇 십
년간 벌을 받지 않고 호화스럽게 사는 걸 보면 씁쓸할 따름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에르네스토는 세 번째 죽음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 영화 후반부에 기념관이 모두 사라진 걸 보면 쓸쓸히
소멸됐음을 예상할 수 있다. 에르네스토와 헥토르는 이렇게 돼서
다행이지만, 아닌 경우에 과연 멕시코의 저승이 좋고 행복하기만 한
곳일지 다시 생각해 볼 법하다.
엄청난 노력으로 멕시코 문화를 한 땀 한 땀 그려낸 코코,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것은 신발인데, 영화 초반 주인공 '미겔'의
친할머니인 '엘레나'의 화끈한 슬리퍼 스매싱부터 시작된다. 이는
'찬클라' 문화라고 부르는데, 슬리퍼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찬클라에서
유래되어 엄마가 신발을 벗어서 아이들을 혼내는 문화를 의미한다.
멕시코를 포함한 라틴계 아이들에게 신발은 가장 강력한 무기로 악명이
높다. 이처럼 찬클라는 멕시코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
체벌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노동자의 상징이기도 하다.
제작진이 모티브로 삼았던 도시 '과나후아토'는 세계적인 신발
생산지로, 이곳에서 멕시코 신발의 70%가 제작된다. 리베라 가문도 이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발 공장을 모티브로 했다.
'이멜다'가 힘들게 일으킨 신발 사업 덕분에 가족들이 대대손손
먹고살고 있는 만큼 신발은 리베라 가문의 자부심, 곧 정체성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헥토르'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데, 다른
등장인물들과 달리 항상 맨발로 다니던 그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신발을
착용했다는 것, 즉 다시 리베라 가문의 구성원이 됐음을 상징하는
장면인 것이다.
코코에서 죽은 자들의 세계에 살고 있는 동물들을
'알레브리헤'라고 부르는데, 멕시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단순히
미적 장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알레브리헤는 실제 멕시코의 조각
예술을 말한다.
알레브리헤는 악마의 기운을 몰아내고 가정을 보호해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코코에서도 '미겔'을 지켜주는 알레브리헤가 두
마리 등장하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바로 영혼의 안내자 '단테'다.
단테는 미겔이 진실을 마주하기 이전에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동물로,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위험에 처해 있는 그를 구하기도
한다.
또 하나는 '이멜다'의 고양이인 '페피타'인데,
페피타(Pepita)는 '과일의 씨앗'이라는 뜻을 지니므로, 의역할 경우
'씨앗이' 정도의 이름이 된다. 보통 이런 이름은 애완동물에게나 붙일
법한 이름이니 이 역시 페피타가 고양이 알레브리헤라는 복선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